지젝(Slavoj Žižek)의 유명한 문장,“They know very well what they are doing, but still, they are doing it.”

■ 1. 이 문장의 기본 의미

지젝은 이 말로 현대인의 이데올로기적 상태가 ‘무지(무식)’ 때문에가 아니라,
오히려 모든 것을 알면서도 그대로 실천하는 독특한 구조
임을 지적합니다.

고전적 이데올로기 이론에서는
“사람들이 속아서 믿기 때문에 행동한다”는 전제를 깔고 있습니다.
예를 들어,

  • 신화에 속아서
  • 종교적 교리에 속아서
  • 정치적 선전에 속아서
    행동한다고 보는 것이죠.

하지만 지젝은 현대 사회에서는 이 설명이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봅니다.
오늘날 사람들은 속지 않습니다.
그들은 이미 “그것이 거짓일 수 있음”을 알고 있고,
그 안에 모순이 존재한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.

그럼에도 불구하고 행동은 계속됩니다.
여기서 지젝은 인간의 주체성을 설명하는 새로운 이데올로기 분석을 제시합니다.


■ 2. “알면서도 한다”라는 구조는 어떻게 가능할까?

지젝의 핵심 논점은 이렇습니다:

현대인의 이데올로기는 ‘믿음의 문제’가 아니라 ‘실천의 문제’이다.

사람들은 믿지 않더라도 행동을 지속합니다.
그리고 바로 이 행동이 이데올로기를 유지시키는 힘이 됩니다.

예를 들어봅시다.

● 사례 1: 자본주의적 소비

사람들은 소비가 환경을 파괴한다는 사실을 아주 잘 알고 있습니다.
하지만 여전히 계속 소비합니다.
알면서도 그대로 합니다.
지젝은 이것이 바로 이데올로기라고 말합니다.

● 사례 2: 선거 정치

정치 시스템이 부패했음을 알고,
기성 정당이 구조적으로 문제 있음을 알면서도,
사람들은 여전히 똑같은 방식으로 투표하고
정치 질서에 참여합니다.

● 사례 3: 직장 노동

오늘의 기업 구조가 착취적임을 알고,
자기 노동이 소외를 낳는다는 것도 알지만,
사람들은 계속 출근하고, 체제를 유지합니다.

지젝이 보기에 이 모든 패턴은
“속아서 하는 행동”이 아니라
알지만, 그래도 하게 만드는 구조입니다.


■ 3. 그럼 왜 ‘알지만 계속할까’?

여기서 지젝은 라캉(Lacan)의 정신분석학 개념,
특히 ‘욕망’과 ‘쾌락(주이상스, jouissance)’을 끌어옵니다.

즉,

주체가 어떤 방식으로든 그 행위에서 쾌락을 얻기 때문이다.

비합리적이라도,
모순적이라도,
그 행동 속에 미세한 만족·안도감·정체성의 지지대가 있어서
행동이 지속됩니다.

예를 들어,

● “나는 자본주의가 문제라는 것을 잘 알지만,

그래도 쇼핑을 하면 잠시나마 기분이 좋아진다.”

이런 미세한 쾌락의 순간들이
주체를 이데올로기 구조 안에 붙들어놓습니다.

그래서 지젝은 말합니다:

이데올로기는 주체가 ‘믿는 것’이 아니라
주체가 ‘하는 것’에 자리 잡는다.


■ 4. 이 문장이 현대 이데올로기 비판에서 갖는 의미

지젝은 알튀세르가 “이데올로기는 실천 속에 있다”고 말한 것을
더 급진적으로 확장합니다.

과거에는

“그들은 속아서 믿는다 → 그래서 행동한다.”
라는 구조였습니다.

지젝은 여기에 새로운 비틀림을 더합니다.

그들은 속지 않는다 → 그래도 행동한다 → 바로 이게 이데올로기다.

즉,
현대의 이데올로기는 사람들을 속이는 것이 아니라,
이미 속지 않는 사람들 속에서조차 작동하는 강력한 구조입니다.

이것이 지젝이 말하는 “시니컬 이데올로기(cynical ideology)”입니다.
시니컬한 사람, 즉
“이건 다 사기야”, “정치엔 희망이 없어”, “자본주의는 원래 그래”
라고 말하는 사람일수록
아이러니하게도
그 체제를 가장 잘 유지시키는 행위자가 됩니다.

왜냐하면
그가 체제를 비난하면서도
그 체제 안에서 행동을 계속하기 때문입니다.


■ 5. 한 문장으로 요약하면

“그들은 그 안에 숨어 있는 허구와 모순을 잘 알고 있지만, 그럼에도 불구하고 계속 행동함으로써 이데올로기를 재생산한다”는 것이 지젝의 핵심 설명입니다.

즉,
이데올로기는 ‘모르는 상태’(false consciousness)가 아니라,
알면서도 지속되는 실천의 구조입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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