■ 1. 슬라보예 지젝(Zižek) — 물신주의, 이데올로기 환상, 주체의 욕망을 기준으로 본 가상화폐
지젝의 이데올로기 비판은
**“이데올로기는 우리가 아는 것보다 더 깊은 무의식적 작동 메커니즘으로 존재한다”**는 전제에서 출발합니다.
그의 핵심 개념으로 가상화폐를 보면 다음과 같은 해석이 가능합니다.
● 1) 가상화폐는 ‘최고도의 물신주의’
지젝은 마르크스의 물신주의 개념을 더 급진적으로 확장했습니다.
‘사물 속에 숨겨진 의미’가 아니라,
우리가 그것을 믿는 방식을 믿는 것조차 모르게 만드는 구조
가 물신주의라고 했습니다.
가상화폐는 여기에 정확히 들어맞습니다.
사람들은 다음을 알고 있습니다:
- 비트코인은 실체가 없고
- 변동성이 극단적이며
- 본원적 가치가 없고
- 국가제도와 무관하며
- 일부 소수 고래가 좌우한다
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믿습니다.
지젝이 자주 하는 말과 완전히 동일합니다:
“그들은 알고 있다. 하지만 여전히 그것을 한다.”
They know very well what they are doing, but still, they are doing it.
가상화폐는 바로 이런 의미에서
**‘이데올로기적 물신성의 순수형태’**라고 볼 수 있습니다.
● 2) 자유의 탈정치적 환상 → 이데올로기의 작동방식
가상화폐 담론은 다음과 같은 슬로건을 반복합니다:
- “중앙은행으로부터의 해방”
- “국가 권력의 간섭 없는 자유로운 경제”
- “알고리즘이 공정성을 보장한다”
지젝이 보기엔 이것은
자유의 가장 강력한 이데올로기적 환상입니다.
왜냐하면:
- 억압(정치 권력)을 제거한다고 하지만,
- 실제로는 더 보이지 않는 억압(시장·알고리즘·플랫폼)을 강화하기 때문입니다.
즉,
“인간은 국가의 통제를 벗어난 것이 아니라,
더 은폐된 통제에 복속되었음을 알아차리지 못한다.”
이는 지젝이 이데올로기를 설명할 때 자주 말하는,
**“자유의 환상 속에 감춰진 새로운 종속”**과 정확히 겹칩니다.
● 3) 가상화폐의 ‘숭배 커뮤니티’ = 판타지의 재생산 구조
지젝에 따르면 이데올로기는
“집단적 판타지(Fantasy)”를 통해 유지됩니다.
비트코인을 둘러싼 판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:
- 언젠가 모든 법정화폐가 붕괴할 것이다.
- 비트코인은 유일한 안전 자산이다.
- 21M 제한이 절대적 희소성을 만든다.
- 시스템이 망해도 나는 살아남는다(HODL 규율).
이런 신념 구조는 거의 종교적이며,
지젝의 말대로 **“주체를 지탱하는 욕망적 판타지”**입니다.
이 판타지가 깨지는 순간—예를 들어 폭락하거나 사기가 터지면—
커뮤니티는 “더 큰 믿음”이라는 방식으로 이데올로기를 복구합니다.
이 역시 지젝이 ‘이데올로기적 모순의 봉합’이라고 부르는 메커니즘입니다.
● 4) 지젝식 결론
가상화폐는 자본주의 이데올로기가 가장 순수한 형태로 작동하는 장치이며,
자유와 해방이라는 환상 속에서 오히려 더 깊은 종속과 물신화된 믿음을 재생산한다.
■ 2. 알랭 바디우(Badiou) — 진리, 사건(event), 세계 구성, 수학적 존재론을 기준으로 본 가상화폐
바디우의 철학은 지젝과 다르게
**“진리의 정치적·주체적 실천”**을 중심에 둡니다.
그에게 진리란
**사건(빠져나간 가능성)**을 충실히 따라가는 주체의 과정입니다.
이 틀에서 가상화폐를 보면 몇 가지 중요한 논점이 드러납니다.
● 1) 가상화폐는 ‘사건(event)’이 아니다 → 진리절차가 불가능
바디우의 이벤트(event)는
기존 질서에 균열을 내고
새로운 가능성을 창조하는
정치적·존재론적 사건입니다.
비트코인은 흔히 “탈중앙화 혁명”, “화폐의 민주화”라고 불리지만,
바디우의 기준에서는 사건이 아닙니다.
왜냐하면:
- 기존 자본주의 질서를 깨뜨리지 않고
- 오히려 그 질서 내부에서 자본주의적 논리를 강화하며
- 새로운 공동체적 주체성도 만들지 못하고
- “가격 상승”이라는 동일한 자본주의적 규칙을 따르기 때문입니다.
즉,
“가상화폐는 사건처럼 보이지만, 세계를 전혀 변형시키지 못하는 ‘비사건적 현상’이다.”
● 2) 수학적·형식적 구조는 있지만, ‘진리’가 아니라 ‘자본의 수학화’
바디우는 존재를 “수학적 다중(multiple)”로 이해합니다.
그런데 가상화폐의 작동 구조도 수학·암호학·알고리즘 기반입니다.
그러나 차이가 있습니다:
- 바디우의 수학은 존재의 개방성과 무한성을 드러내는 것
- 가상화폐의 수학은 자본 축적을 위한 희소성의 강제입니다.
수학적 형식은 비슷해 보이지만, 방향은 반대입니다.
따라서 바디우에게 가상화폐는:
“자본이 스스로를 더 완전하게 형식화한 메커니즘”
이지, ‘새로운 존재론적 개방’이 아닙니다.
● 3) 가상화폐는 새로운 ‘진리의 정치’를 만들지 못한다
바디우는 진리절차를 네 가지로 나눕니다:
- 정치
- 사랑
- 예술
- 과학
비트코인은 이 네 영역 어디에서도
새로운 진리적 주체를 생산하지 못합니다.
오히려:
- 이익을 극대화하는 투자자
- 가격 상승에 몰입한 투기적 욕망
- 기술관료적 권력
- 자본주의적 측정 가능성
이런 요소들을 강화합니다.
따라서 가상화폐는
**정치적 주체의 탄생이 아니라 ‘자본주의적 주체의 반복’**을 가져옵니다.
● 4) 바디우식 결론
가상화폐는 새로운 사건도 아니고 진리도 아니다.
그것은 자본주의의 세계를 더욱 정교하게 수학화하고,
주체를 가격·희소성·투기라는 질서 안에 가두는 반(反)해방적 장치다.
■ 3. 지젝 vs. 바디우 — 가상화폐 이데올로기의 핵심 비교
| 구분 | 지젝(Zižek) | 바디우(Badiou) |
|---|---|---|
| 이데올로기 성격 | 욕망과 판타지의 물신적 구조 | 사건의 부재, 진리절차의 실패 |
| 핵심 문제 | “자유”라는 환상이 숨기는 종속 | “혁명성”이라는 허구—실은 자본의 재생산 |
| 주체성 | 욕망이 코인에 종속된 소비자 주체 | 진리적 주체가 아니라 자본주의적 투자자 주체 |
| 가상화폐의 본질 | 궁극적 물신주의 | 비사건적 재현(자본의 수학화) |
| 결과 | 자본의 이데올로기 강화를 은폐 | 새로운 가능성 폐쇄—해방정치 불가능 |
두 철학자 모두, 결론은 다르지만 핵심은 같습니다:
가상화폐는 해방의 기술이 아니라,
더 정교한 방식으로 시장·자본·판타지가 주체를 지배하는 이데올로기적 장치다.
