가상화폐와 네그리·하트의 다중(multiplicity) 이론 비교

■ 1. 먼저, 네그리·하트의 핵심 관점을 아주 간단히 정리

그들의 『Empire』, 『Multitude』, 『Commonwealth』에서 가장 중요한 개념은 다음 세 가지입니다.

● (1) 제국(Empire)

  • 국민국가가 아니라
  • 글로벌 자본 + 초국가적 제도 + 네트워크 권력
    으로 구성된 새로운 지배 구조.

● (2) 다중(multitude)

  • 서로 다른 주체들이
  • 차이를 유지한 채
  • 네트워크적으로 협력하며
  • 공동생산과 공동정치를 수행하는 집합적 힘.

● (3) 공통적인 것(the common)

  • 토지·물·대기 같은 자연 자원뿐 아니라
  • 지식, 코드, 언어, 네트워크 같은
    비물질적 생산의 공동 자원.

즉, 다중은

“차이를 유지한 다자(多者)가 협력 네트워크로 자신들의 삶과 질서를 창조하는 존재”
입니다.


■ 2. 이 틀을 가상화폐에 적용하면 두 가지 상반된 평가가 나타난다

● ① 가상화폐는 다중의 힘을 체현하는 ‘탈중앙 조직의 기술’인가?

● ② 아니면 제국의 금융권력이 새롭게 확장된 형태인가?

네그리·하트의 이론은 ‘양면성’을 드러내는 데 매우 적합합니다.


■ 3. 가상화폐는 다중과 닮은 점이 있다 — 긍정적 측면(표면적 유사성)

■ (1) 탈중앙적 네트워크라는 특징

비트코인은 중앙은행 없이 작동하며,
누구나 노드가 될 수 있는 구조를 취합니다.

다중(multiplicity)의 조건인

  • 분산성
  • 비위계적 구조
  • 네트워크 기반
    과 상당한 유사성이 있죠.

■ (2) 국경 초월성 – 다중의 글로벌 협력 구조와 닮음

비트코인은 특정 국가·민족·통화권에 묶이지 않습니다.
네그리·하트는 다중을 글로벌 협업체로 이해했습니다.
이 점에서 블록체인의 작동 방식은
다중의 비영토적(subjectivity beyond nation-state) 성격과 비슷합니다.

■ (3) ‘코드와 네트워크’라는 공유 기반(common)

블록체인은 공개 프로토콜이며,
코드는 누구나 열람할 수 있는 일종의 common입니다.

네그리·하트의

“지식·언어·네트워크가 새로운 공통 자원”
이라는 논점과도 연결됩니다.

이 때문에 일부 해커·리버테리언들은
블록체인을 “다중의 기술적 표현”이라고 보기도 합니다.


■ 4. 그러나 네그리·하트의 관점에서 보면, 가상화폐는 결정적으로 다중과 다르다

겉으로는 닮아 있으나, 핵심적인 철학적 지점에서는 크게 어긋납니다.


◆ (1) 가상화폐는 **공통(common)**이 아니라 “사적(私的) 소유를 극단화한 구조”

비트코인이든 이더리움이든
가상화폐의 핵심은 **사적 키(private key)**를 가진 개인에게 절대적 소유권이 귀속된다는 점입니다.

네그리·하트가 말한 공통(common)은

  • 공유
  • 협력
  • 함께 구성하는 생산
    을 의미합니다.

그러나 가상화폐 시스템은 철저한

사적 소유의 디지털 버전
입니다.

즉, 다중의 공통성과 정반대 성격을 가집니다.


◆ (2) 다중은 협력적 생산을 지향하지만, 가상화폐는 경쟁·투기를 강화한다

다중은 “공동생산(co-production)”의 주체이며,
협력과 상호성을 강조합니다.

반면 가상화폐는:

  • 가격 상승 기대투자
  • 채굴 경쟁
  • 고래(대량보유자)의 지배
  • 파생상품·레버리지
  • 거래소 중심의 독점적 네트워크

이런 요소들이 다중의 협력성과는 반대인
경쟁적·투기적·비상호적 구조를 낳습니다.

즉, 가상화폐는

“공통적인 것의 확장”이 아니라 “시장 경쟁의 극단화”
입니다.


◆ (3) 다중은 새로운 민주적 정치의 가능성인데, 가상화폐는 ‘탈정치적 환상’

다중은 자신들의 삶과 체제를 “정치적으로 구성하는 힘”을 의미합니다.

반면 가상화폐는 다음과 같이 주장합니다:

  • “정치는 필요 없다”
  • “중앙은행이 없어야 자유다”
  • “알고리즘이 공정하다”

이것은 정치의 제거입니다.

하트·네그리 관점에서 보면 이는

자유라는 이름으로 정치적 공간을 비워내는 신자유주의적 환상

즉, 다중의 정치적 가능성을 확장하는 것이 아니라,
정치 participation을 기술적 메커니즘으로 대체하는 구조입니다.


◆ (4) 다중은 ‘생산적 삶의 힘’이지만, 가상화폐는 사회적 생산과 거의 무관

네그리·하트의 다중은

  • 사회적 협력
  • 정동적 노동(affective labor)
  • 지식 생산
  • 공동체의 재생산

을 통해 가치가 창출되는 주체입니다.

반면 가상화폐는
아무런 사회적 생산과 연관되지 않고,
오히려 GPU 연산과 전력 소모가 핵심입니다.

다중의 생산적 삶과는 반대 방향입니다.


◆ (5) 가상화폐는 오히려 *제국(Empire)*의 구조를 강화

가상화폐는

  • 글로벌 자본 이동
  • 규제 회피
  • 국가 경계를 뛰어넘는 자본 흐름
  • 금융 투기의 즉각적 세계화

을 가능하게 합니다.

제국의 특징이
“경계 없는 금융-자본의 흐름”인데,
가상화폐는 이를 더 가속화합니다.

즉, 다중의 해방이 아니라
제국의 금융적 권력을 더 확장시키는 장치가 될 수 있습니다.


■ 5. 요약 — 가상화폐와 다중 이론의 관계를 한 문장으로 정리하면

가상화폐는 외형상 탈중앙성과 네트워크성 때문에 ‘다중적’ 기술처럼 보이지만,
그 실질은 공통을 증진하기보다 제국의 금융화를 확장하고
사적 소유·투기·경쟁·탈정치를 강화하는 구조에 가깝다.

즉,

✔ 겉모습: 네트워크적·탈중앙적 → 다중적

✔ 실제 작동: 투기·사적 소유·금융화 → 제국적

네그리·하트의 기준에서 보면
가상화폐는 다중의 해방적 잠재력보다는
제국의 금융 네트워크를 강화하는 기술이라는 평가가 보다 설득력 있습니다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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